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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안희제 생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3호)

백산 안희제 기념관
경북중앙뉴스 기자 / gbjanews@hanmail.net입력 : 2025년 05월 23일

나라를 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망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는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국민이 뽑은 정치인이다. 그런데 가장 실망의 대상이 정치인으로 하락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유독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지금은 더 심화되어 연일 뉴스에 정치싸움으로 도배를 하니 뉴스 보기가 싫어진다.
국민의 희망은 정치로 인해 불편한 삶에서 벗어나야 만 하는 바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주의 작은 점 하나의 평온한 지구에 행복한 낙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여기, 나라를 빼앗겨 실의의 위기에 목숨을 걸고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선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을 살펴본다.

의령 안희제 생가는 1885년 부림면 입산에서 안희제가 태어난 곳이다. 안희제 생가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 등 3동으로 되어 있다. 안채는 앞면 6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기와 건물이다. 왼쪽에서부터 마루, 방, 큰 마루, 방, 부엌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앞면 4칸 규모의 초가 건물로 안채와 매우 가깝게 붙어 있다. 안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두 건물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고, 남쪽으로 1칸 크기의 마루를 두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또 별도의 건물을 두지 않고 한 건물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여러 방을 둔 조선 시대 후기 민가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안희제는 1914년 부산에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백산상회는 단순한 개인 기업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국내 연락 거점으로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의 60% 이상을 지원하였다. 또 민족 교육과 민족 언론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으며, 독립투사로 헌신하며 생을 마감하였다. 소재지: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로2길 37 (입산리)
[출처] 국가유산청/경상남도 의령군 문화관광과 055-570-2532 (개별안내판)

백산 안희제 선생께서는 본관은 탐진(耽津). 호는 백산(白山). 경상남도 의령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때,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항일투쟁을 벌였으며, 백산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 중앙일보 사장을 역임하며 항일 언론활동을 전개한 실업가 · 대종교인 · 독립운동가이며 생애 및 활동사항: 21세에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했다가 이듬해 봄에 양정의숙(養正義塾) 경제과로 전학해 24세에 졸업하였다.
1907년 동래의 구포에 구명학교(龜明學校)와 의령군 의령면에 의신학교(宜新學校)를 설립하였다. 1908년에는 고향인 의령군 입산리에 창남학교(刱南學校)를 창설하였다.
1909년 10월 윤세복(尹世復)·서상일(徐相日)·신성모(申性模)·남형우(南亨祐)·박중화(朴重華) 등 80여 명의 동지들과 비밀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해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 만주와 시베리아를 유랑하며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하였다.
1914년 부산에서 백산상회(白山商會)를 경영해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국내외 독립운동단체의 연락처를 제공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의령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해서 각지에 배포, 군민들의 봉기를 촉구하였다.
그 해에 백산상회를 백산무역주식회사(白山貿易株式會社)로 확대 개편해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조달기관으로 활동하게 하였다. 11월에는 기미육영회(己未育英會)를 조직해 다수의 애국청년학생들을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까지 유학시켰으며, 이러한 장학생들 중에서 많은 독립운동가가 배출되었다.
1925년에는 운영난에 빠진 중외일보를 인수해 중앙일보로 개칭하고 사장이 되어 일본의 총독정치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또한, 1927년 이시목(李時穆) 등과 자력사(自力社)를 조직해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 뒤 다시 만주로 건너가 1931년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였다.
1933년 발해의 옛 수도인 동경성(東京城)에 발해농장을 세워 교포들의 생활 안정과 청소년 교육에 힘썼다. 중국인 지주들에게 착취당하고 있던 한국인 소작농 300여 호를 유치해 토지를 분배해주고 5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자작농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발해농장 안에 발해학교를 설립해 농민들과 그 자녀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해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대종교를 신봉해 총본사전강(總本司典講)·교적간행회장(敎籍刊行會長) 등을 역임하면서 민족 고유의 종교를 통한 민족정신 고취에 힘썼다. 그러나 1942년 11월 일제가 대종교를 독립운동조직으로 간주해 만주와 국내에서 윤세복 이하 대종교 지도자 21명을 일거에 체포한 임오교변사건이 일어났을 때 투옥되었다.
대종교의 독립운동에 대한 혐의로 잔혹한 고문을 받다가 9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이듬해 목단강병원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종교에서는 순국십현(殉國十賢)의 한 사람으로 추존하였고,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5125

생가에서 역사관까지는 인근에 자리하며, 차량 거리 10분이면 정곡면에 이병철 회장 생가가 있고, 의령에는 곽재우 장군의 의병박물관과 ”의령 의병제“, 정암루와 솥바위, 또한 인근에는 세계최대의 동굴법당 봉황산 일붕사와 한우산, 그리고 신반을 들러보면 천년의 한지와 우륵의 가야금 “신번문화제”와 아름다운 정원 “소천정“등 많은 볼거리와 문화마당이 펼쳐져 있다.
필자의 부친께서는 생가의 동네 입산초등학교에서 교감으로 재직 하셨기에 뜻깊고, 그리고 유년 시절은 동네 친구들과 신반 냇가에서 물놀이 하던 천진난만한 추억이 그립다. 정곡은 본적지로써 해마다 산소엘 들리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즐거움과 고향 특유의 구수한 향기를 그윽하게 내세울 게 많아 자랑스럽다.

경북중앙뉴스_편집위원/기자_최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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