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원은 조선 선조 때의 대 유학자이며 문신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그의 사후인 인조 5년(1627)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서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선조 16년(1583)에 정구가 회연초당(檜淵草當)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서원의 주향(主享)인 한강 정구는 외증조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 위에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워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으며, 우주 공간의 모든 것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경서, 병학, 의학, 역사, 천문, 풍수지리 등 모든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예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대학자였다.
그는 평소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으나, 국가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하여 부득이 관직에 나올 경우에는 주로 외직을 맡아 선정을 베풀었으며, 내직으로 우승지(右承旨), 공조참판(工曹參判), 대사헌(大司憲)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에 문목(文穆)의 시호(諡號)가 내려졌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구(舊)사당, 강당, 동·서재, 신(新)사당, 전사청(典祀廳), 현도루(見道樓) 등이 있으며, 정구가 직접 조성한 서원 앞뜰의 백매원(百梅園)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서 있으며, 그밖에 한강 정구와 관련된 유물,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 전시관과 향현사(鄕賢祠), 관리사가 있다.
사당에는 한강 정구를 주향(主享),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를 종향(從享)으로 모시고 향현사에는 신연(新淵) 송사이(宋師頤), 용재(容齋) 이홍기(李弘器),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 동호(東湖) 이서(李) 등 한강 정구와 동년배로서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들의 위판이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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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서원은 650여 개였다.
당시 흥선대원군에 의해 서원 철폐령으로 사라지고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서원은 약 47곳 정도라 한다.
그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원은 9곳이다.
거기에는 특징적으로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게는 지역 성현들을 배향하는 장소이자 과거시험 준비와 성리학을 교육하는 역할을 하였고, 조선시대의 건축적 미학으로 철저히 자연을 헤치지 않고 주변 지형과의 조화로 탄생해 지금까지 역사와 문화, 교육의 정서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서 성주 10경 중 제3경은 회연서원과 무흘구곡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겸재 정선이 경상도 청하에서 현감으로 재직시 내연산삼룡추도(內延山三龍湫圖)가 유명하며 성주를 여행하다 산수가 빼어난 무흘구곡(武屹九曲)의 시작점으로 알려진 봉비암(鳳飛巖)을 서원과 배치하여 조화를 이루어 내었다.
그리고 암봉을 실제 모양보다 과장하여 날카롭고 거칠게 표현한 부벽준법으로 그려내었으며 오늘날까지 진경산수화의 명작으로 전해진다.
특히나 ”회연초당“을 건립하면서 조성된 100그루의 매화나무는 ”백매원“(百梅園)이라 한다.
매년 3월이면 진한 향기와 해맑은 하얀 얼굴을 내밀며 봄을 알린다.
이런 경치에 연인들과 시인과 화가들은 이 아름다움은 자연을 가까이하게 하는 눈의 즐거움과 또 다른 향기로 사랑을 싹트게 해준다.
매화는 고결한 절개와 지조, 역경 속에서도 생명력을 지니고 피어나는 새로운 희망을 상징하며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제일 먼저 피어나는 꽃이기에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에 사군자로 포함되어 있다.
성주의 회연서원은 매화꽃과 물의 흐름으로 잘 배치하여 매혹적인 아름다움과 여유로 쉼표다운 쉼표를 편안하게 만들어 옛 정취를 한 아름 안겨주고 전통과 역사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고마운 서원이다.
* 무흘구곡: 9개의 협곡과 주상절리
* 진경산수화: 우리나라의 산천을 조선시대 후기에 한국적 화풍으로 개척하여 형성되었다
* 암봉: 바위의 봉우리
* 개자원화전” 중국 청나라 시대에 발간되어 전4 집으로 구성되어 산수화를 그리는 기본 회화 학습서이며 “개자원”은 겨자씨처럼 작은 정원이라는 뜻으로 겸손함의 의미이고 “화전”은 그림의 기법과 이론 전한다는 뜻이다.
경북중앙NEWS 편집위원/기자 최상철